내가 어렸을 적엔 우표를 모으는 것은 하나의 재테크이자 취미였다.
우표가 발행되지 전에 어떤 우표인지 미리 볼 수 있는 책자가 우체국에 구비되어 있었고 우표가 발행되는 당일이 되면 우체국에는 맛집처럼 줄이 길게 들어섰다.
특히 대통령 우표가 발행될 때에는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가 줄을 서 기다리거나, 나중에는 예약 시스템이 생길 정도였다.
컬랙션은 오래된 물건일수록 가격이 높아진다.
우표 또한 수집가들이 많은 시절에는 90년대 초반 10원짜리 우표 한 장이 몇십만 원을 호가하는 경우도 있었다.
하지만 점차 우표수집이 하향길로 접어들자 우표값은 우표에 적힌 그 값 이상도 이하도 아니게 되었다.
문득 이런 생각을 한다.
내가 나이를 먹고 성숙해지는 단계를 거쳐 늙어갈 때 과연 그 시대의 젊은이들은 우리 세대를 어떻게 바라볼까?
우표처럼 필요 없는 구시대의 영광으로 바라보진 않을까?
결국, 우리는 그 시대에 적응하고 변해야 한다.
쓸모가 없어진 것들은 버려지거나 가치 없어지는 것이 아닌, 그 시대의 이야기와 경험을 전달하는 매개체가 될 수 있다.
우표는 모으는 것 하나만의 가치를 가진것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내 소식을 전달하는 수고료다.
나오는 대로 뱉어내는 말이 아닌, 몇 번을 고쳐 쓰고 전해져 몇십 번이고 읽히는 소중한 글의 전달료인 것이다.
나도 우표를 엄청나게 모았지만 우표 수집가가 없어진다는 소리에 "있는 우표 팔아도 돈이 안 되겠다. 재테크 망했네"라는 마음이 들었던 어린 시절과는 다르게 지금은 "우표를 쓸 일이 없어진 지금이 허무해진다"라고 느끼게 된다.
블루투스 이어폰이 활성화될 때엔 줄로 된 이어폰을 가진 사람을 보면 '시대에 뒤떨어지네. 구식이다'는 마음이 드는 건 당연하다.
그러나 블루투스 이어폰이 보편화되고 나서도 줄로 된 이어폰을 가진 사람을 보면 구식이라는 생각보다는 '줄로 된 이어폰이 더 좋은 이유가 있겠네. 편함을 포기하고 쓸 정도면 뭐가 있나 봐'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.
언제나 발전만을 향해가는 움직임에는 잊히는 옛 영광들이 존재한다.
너무 빨리 앞서 나가서 뒤 따라갈 수 없는 이도 있을 것이다.
그래도 말하고 싶다.
언젠가는 우표가, 우표를 쓰는 편지가 다시 돌아올 것이라고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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